3회 부산국제사진제(31일~9월 28일)를 앞두고 부산 사진계가 목하 술렁이고 있다. 부산에선 보기 드문 대형 사진 축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부산일보사와 부산예술사진가회(회장 백성욱·66)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는 부산 영도구 청학동 거청조선소에서 열린다. 가을이란 계절만큼이나 풍성한 결실을 예고하고 있다.
불과 3회째에 불과하지만 부산국제사진제는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이 행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백성욱 회장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롤모델로 삼아 부산국제사진제를 세계적인 축제로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맨땅에 헤딩하기’로 여겨졌던 사진제를 성공적으로 착근시키고 있는 백 회장. 그는 빈틈없는 행사 개최를 위해 몇 달 전부터 밤낮없이 뛰고 있다. 신경정신건강의학과 개업의이기도 한 그는 ‘조직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는다. 행사가 열릴 예정인 거청조선소에서 그를 만났다.
-제3회 부산국제사진제의 주제는 뭔가?
“‘나는 사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What will I do with the photography)?’이다. 제1회 주제가 ‘나의 사진의 위치는 어디인가?’였고, 2회 때는 ‘사진이란 무엇인가?’였다. 사진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인가, 나를 비춰서 보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상징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원락 전시기획자의 의도가 잘 반영돼 있다.”
-1,2회보다 행사 규모가 좀 커졌나?
“해가 갈수록 규모가 확장되고 내용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회 때는 800, 2회 때는 1200, 이번에는 1500 작품이 전시된다. 예산은 대략 1억 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2억 원 이상 드는 행사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조직위원회 위원들과 사진 애호가들이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행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회장은 “저비용 고효율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자금 사정으로 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가져오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1억여 원의 경비 중 부산시 지원금은 4000만 원. ‘국제’사진제라는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적은 금액이다.
-행사 장소가 흥미롭다. 어떻게 폐조선소인 거청조선소를 선택하게 됐나?
“부산국제사진제는 아직 행사 장소가 특정돼 있지 않다. 해마다 더 나은 환경과 특별한 조건을 갖춘 장소를 섭외하고 있는데, 거청조선소가 장소의 상징성 등에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거청조선소 선택은 모험이자 기회이다. 도심에서 먼 영도에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고, 폐조선소라는 장소는 기회이다. 거청조선소는 이번에 처음으로 예술공간으로 사용된다. 이 행사 후에도 영도의 빛나는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기를 기대한다.”
조선경기의 영향으로 거청조선소는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길이 100m, 폭 27m, 높이(최고) 45m의 조선소는 국내에선 보기 힘든 거대한 전시공간이다. 천장과 사방이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 자연채광이 조명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3만㎡ 이상의 외부 공간이 있어 관객들이 주차하기에 매우 편리하고 부산항대교 등 부산 앞바다 조망도 매력적이다.
-이번 행사의 특징적인 점은 뭔가?
“영도에서 열리는 만큼 영도 사람들의 삶을 반추하는 행사를 준비했다. ‘영도 사람들-어제 전 오늘 전’이 그것이다. ‘어제 전’은 각 가정의 장롱 속에 잠들어 있는 옛 사진들을 찾아내 전시하는 것이고, ‘오늘 전’은 영도를 대표할 만한 100인의 초상화를 찍어 전시하는 것이다.”
백 회장은 “영도는 아직도 공동체 생활이 가능하고 감정적 연대를 맺으며 살아가는 지역이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등 도시재생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사진제가 그 흐름을 추동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처음에 왜 국제사진제를 개최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부산보다 못한 도시들도 국제적인 사진 행사를 열고 있는데, 부산에는 사진 관련 행사가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다. 부산이 어떤 곳인가. 영상 이미지가 매우 발달한 도시이자 6·25 때 전국의 사진가들이 다 모여들었던 도시이다. 무엇보다 최민식 같은 사진 거장들을 배출한 곳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롤모델로 삼아 열정을 쏟으면 사진제도 분명히 세계적인 사진 축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백 회장을 비롯해 조직위원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사진가로 구성돼 있다.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사진에 대한 조예가 깊은 소위 ‘하이 아마추어’ 작가들이 이 행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백 회장은 “아마추어들은 재정적 능력을 기부함으로써 조직의 유지·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면서 “예술적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은 전업 작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메꿔 가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국제사진제를 세계적인 행사로 키워 나가기 위한 비전은 뭔가?
“이제 3회째인데, 너무 거창한 질문 아닌가.(웃음) 더 큰 사진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재정이 확립돼야 한다. 조직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향상될 것으로 본다. 재정이 문제인데, 부산시 지원이 늘어나고 정부 도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작정 돈을 내놔라 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더 나은 사진제를 만들어 내고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행정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은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의 협찬을 이끌어내는 것도 과제이다.”
-회장께선 개업의인데, 언제부터 사진을 배우게 됐나?
“2011년부터 전문 사진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 전엔 배드민턴을 열심히 했는데, 부상 이후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는데, 하면 할수록 사진의 심오한 맛에 빠져들었다.”
-사진에 뭘 담고 싶었나?
“내 첫 개인전이 2015년의 ‘한실’이었다. 한실은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한실마을로, 내 고향이다. 고향을 담고 싶었다.”
백 회장은 1965년 사연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고향마을을 등져야 했다. 12살의 소년에겐 실향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20여년 전 한실마을의 분교를 사들여 가꾸며 주말마다 찾고 있다.
반구대산골영화제의 한 장면.
반구대산골영화제의 한 장면.
-반구대산골영화제를 만든 것도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었나?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고향을 찾지 못한 상처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고, 유년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마을을 남에게 보여 주고도 싶었다.”
백 회장은 2011년 한실 ‘은행나무집’(분교)에서 지인들과 조촐한 영화제를 개최했다. 그게 반구대산골영화제의 모태이다. 올해 9회를 맞은 산골영화제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 몇 년 전부터 장소를 암각화박물관 근처로 옮겼다. 그는 1~7대 조직위원장을 지낸 뒤 현재는 고문으로 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나? 정신과 전문의로서 조언을 한다면.
“몸이 필요한 것과 마음이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게 기본이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자고, 생식하는 것이고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공감이다. 갈등이 있으면 불행해진다. 갈등은 대화를 통해 공감을 할 수 있으면 해결된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공감의 폭을 넓혀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떨어진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의 상호관계를 잘 유지할 필요가 있다.”
백 회장은 사진과 배드민턴 동호회, 인문학 모임인 ‘사수회’ 등 여러 가지 모임을 주도하며 활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는 편이다. 그래야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나이 들수록 베푸는 것은 기본이고, 많은 대화를 통해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은 말로 표현하고 공감하는 데서 크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의 화두는 결국 공감이었다. 그는 혼자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사진제는 많은 선원들의 헌신과 유기적 협조로 움직이는 거대한 범선과 같으니까.”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82718165335629